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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어요^^

[스크랩] 고향에 돌아온 사내를 포근히 감싸준 나무 -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

[나무를 찾아서] 어른이 돼 고향에 돌아온 사내를 포근히 감싸 준 나무

   [2012. 2. 27]

   이름만 들어서는 자칫 외래종 나무로 짐작하게 되는 나무 가운데 '푸조나무'가 있습니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이 나무를 소개했더니, 한 젊은 친구는 외국의 어느 자동차 이름과 같아서 재밌다는 댓글을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스펠링은 다르지만 영화 '대부(代父)'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의 이름도 푸조(Mario Puzo)이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 말에서는 '푸조'라는 말이 달리 쓰이는 경우를 찾기 어려운데 외국어 가운데에 유명한 쓰임새가 많은 말이 '푸조'인 듯합니다.

   하지만 푸조나무는 분명 우리 토종나무입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저절로 자라는 나무이지요. 우리나라의 중부 지방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남부 지방에서는 중부지방의 느티나무나 팽나무만큼 흔하게 자라는 나무입니다. 남부 지방에서도 특히 남해안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그럼에도 이름이 다소 이국적이어서,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려 애썼습니다만, 아직 저로서는 답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실마리라면 이우철 선생님의 '한국 식물명의 유래'라는 용어사전에 '남부 방언'이라고만 나오는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지방말까지 수록한 우리말 대사전에도 '푸조'라는 말은 나오지 않아서 더 이상의 확인은 어렵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제게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 편지를 받아보시는 분 중에 남부 지방에 사시는 분들이 계실테니, 혹시 그 지방 말 가운데 '푸조'라는 표현이 있는지, 아시는 대로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푸조나무 가운데에 제게 가장 인상적인 나무는 단연 오늘 편지의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전남 강진 병영면 사당리 푸조나무입니다. 십 년도 훨씬 전인 2000년 겨울에 처음 이 나무를 만난 뒤로 저는 '푸조나무'하면 이 푸조나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생김새도 무척 훌륭한 나무임에 틀림없지만 우선 그 크기에 압도당한 까닭입니다. 특히 나무 밑동 부분의 굵은 줄기가 보여주는 우람함은 여느 큰 나무를 압도할 정도이죠.

   아주 오래 전에 큰 바람을 맞고 중심 줄기가 부러진 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라움은 더 커집니다. 중심 줄기가 부러지자, 줄기 곁에 남아있던 가지들이 나무의 생명을 지탱했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몸뚱아리 전체를 파고든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긴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줄기의 한가운데 부분이 텅 빈 느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줄기 바깥에서 자라면서 안쪽의 빈 자리를 조금씩 채워가며 자란 원래의 줄기보다 더 굵게 자란 가지들의 모습은 더 없이 훌륭합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모습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신비로운 자태입니다. 천연기념물 제35호인 이 나무는 이제 국가적으로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천연기념물이라 해도 나무 보호를 위한 특별한 지원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마을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해마다 날짜를 정해서 이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의논했다고 합니다. 바로 칠월칠석이 그런 날이었지요. 그 모임에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조금씩 추렴해 충당했다고도 하고, 울력이 필요하면 너나할것없이 스스로 나섰다고도 합니다.

   [나무와 사람 이야기 (65) -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 칼럼 원문 보기

   위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며칠 전에 이 나무를 소개한 신문 칼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답사 때에는 먼저 길가에 서 있는 이 나무를 한참 바라보고 인사를 나눈 뒤에 길 안쪽으로 이어지는 조용한 마을을 찾아들었습니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가 열린 대문 안쪽에 기척이 있는 집으로 무작정 들어섰지요. 안에는 어릴 때 이 마을로 시집오셨다는 할머니가 계셨어요. 할머니와 나무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무를 극진하게 보살핀다는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경운기 소리가 왁자하더니, 제 또래의 사내가 집 안마당으로 들어왔어요. 할머니의 아드님과 사내의 두 딸이었습니다. 대낮이었지만, 사내는 술 한 잔 마신 듯 두 볼이 불콰했습니다. 할머니와 나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라고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내는 옛날에 누가 이 푸조나무를 베어내다가 벌을 받아 죽었다는 이야기(이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만)를 덧붙였습니다.

   처음에는 무뚝뚝하더니 금세 긴장을 풀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속내를 털어놓은 그 사내는 이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젊어서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경기도 의정부 쪽에 있는 염색 공장에 취직해 일을 했지요.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하지만 쪼들린 살림으로 고달프게 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알콜 중독에 빠졌다고 합니다. 결국 아내와도 헤어지게 됐고, 두 아이를 홀로 키울 수 없어 빈털터리가 되어 병든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온 겁니다.

   사내는 고향에 돌아와 집 안에 외양간을 짓고 소를 키웠습니다. 또 고향에 남은 땅에서 농사도 지었지요. 어떻게든 알콜 중독을 치료하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도무지 술 없이는 견딜 수 없어, 여전히 조금씩 술을 마시며 지낸다며 그는 깊은 한숨을 지었습니다. 또 농사를 지으며 지탱하는 살림살이가 예전같지 않아 걱정이 깊다는 이야기도 보탰습니다. 나무 이야기는 젖혀놓고 사내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오랜 친구처럼 마당 가장자리에 주저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내는 이야기했습니다. 젊음도 근력도 희망도 모두 잃어버린 채 고향에 돌아오던 그 때 마을의 모든 것은 변해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오래 떠나 있었다지만, 고향 마을 풍경은 참을 수 없이 낯설었답니다. 그가 떠나있던 동안 이 마을에는 유명한 고려청자박물관이 들어왔지요. 농촌마을 치고는 매우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곳이 바로 고려청자도요지이거든요. 그래서 농촌이기는 하지만 관광지로서 더 많이 알려진 곳이지요.

   그런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내가 이곳에 돌아오면서 고향의 푸근함을 느낄 수 있던 것은 바로 마을 어귀의 푸조나무, 바로 오늘 사진으로 보여드리는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였습니다. 고향집도 사람도 다가서기가 쉽지 않고, 모두 낯설기만 했지만, 고향을 떠나기 전의 어린 시절에 매달려 놀던 큰 나무 한 그루만큼은 다 잃고 돌아온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고 했습니다.

   사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나오는 길에 다시 나무 앞에 섰습니다. 수백 년 동안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준 나무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언제나 고향 마을을 지키고, 도시의 낙오자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 사내를 반가이 맞이해 준 것도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나무에게 짧게 한 마디 던졌습니다. 지금 다시 나무의 품 안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힘겹게 살아갈 마을 사내의 안녕과 평화를 더 듬직하게 지켜달라고!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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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바람재 들꽃
글쓴이 : 정가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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