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의 독산성 풍경은
아침에 올라서 본 느낌과 전혀 달랐다.
가을이 가는 모습처럼 지는 해가 담긴 갈빛에 가슴이 뭉클 ~
저녁산책이나 하자고 올라 갔다가 멋진 풍경을 선물로 받았다.
지는 해도 가는 가을도 아쉽기만 하다.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40호로 지정되었다. 성 둘레 3,240m, 석축 약 400m와 4개의 성문이 남아 있다. 백제시대에 축조하여 통일신라·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1593년(선조 26) 7월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 권율(權慄)이 2만의 근왕병(勤王兵)을 모집, 이 성에 진을 치고 왜적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1594년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인근 백성들이 합심하여 허술한 성의 모양을 다시 갖추고 1602년 변응성(邊應星)의 지휘 아래 다시 수축하였으며 1796년(정조 20) 개축하였다. 이 당시 성의 둘레는 1,800보(步), 4개의 문이 있었다.
한편 1593년 권율이 이 성에 주둔하고 있을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은 벌거숭이산[禿山]에 축조한 이 성에 물이 없을 것으로 짐작하고 물을 부어 조선군을 조롱하였다. 그러나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백마를 산위로 끌어올려서 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자 왜군은 이에 속아 퇴각하였다. 이때부터 이곳을 세마대라 불렀다 하며, 1592년 여기에 세마대를 세우고 병기창을 두어 무예연습을 하게 하였다. 1957년 세마대를 옛 자리에 복원하였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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