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4호선 6번 출구
까마득히 높은 계단을 나와
총총걸음으로 성북동골짜기로 향한다.
제각기 사색의 차림으로 누구는 길상사로 향하고
누구는 일 년에 두 번 여는 간송미술관을 향한다.
큰길가 작은 가게에는 재개발에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는 통념을 깨고 작은 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담장아래 소박한 꽃들이 웃는다.
우리가 향하는 길상사 가는 길은
흔한 시내버스는 다니지 않는다.
배꼽 등에 불을 켠 택시와
차종을 알 수 없는 멋진 차들이 간간히 오르내릴 뿐이다.
양 옆을 보니 미로처럼 이리저리 이어진 고급주택들이다.
철옹성 같은 담벼락에서 우린 햇볕바라기 하는 잠자리처럼 기념사진을 찍었으나
높은 집 강아지는 짖지 않았다.
서울의 거리는 잘 차려입은 아낙의 뒤 태 같은데
가을의 긴 그림자는 기웃거리는 노숙자의 차림처럼 보였다.
마치 다른 나라를 찾은 사람처럼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그림에서 보았던 길상사 앞에 서서
잠시 법정스님을 생각했다.
무소유
가을과 참 어울리는 단어란 생각을 했다.
다 떠나보내기 전의 풍경들을 담기위해 찾았으면서
커다란 느티나무를 올려다보며 무수히 떨어질 낙엽을 그려 보았다.
내가 걷는 길이 남들과 다름은 무엇일까?
내 인생에 순응하며 감사하고 기뻐하고 그러면 족한 것 아닐까?
머리위로 초록 양산 ,파란 하늘 ,고운 빛의 무지개가 어른거리며 지나갔다.
새소리며 바람소리 거기에 친구들과 웃음소리,
때론 묵언도 또 다른 함성이 되어 내안을 울리고 있음을 안다.
전에 오르던 길을 수월하게 내려와
작은 편의점 앞에서 우회전,
성북초등학교를 끼고 우회전
파출소를 지나 또 우회전 좁은 길을 오르는 사람이 많은 걸로 보아
미술관이 가까웠음을 안다.
정문에 민속풍물화전을 알리고 있다.
별로 손을 대지 않은 뜰엔 오후햇살을 받은 산국이 별처럼 빛을 내고 있고
키 작은 꽃향유는 햇빛을 덜 받아 연보랏빛으로 피었다.
사람들은 사당역의 출근시간만큼 붐볐다.
많은 이들이 전시회를 축하하는 화분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보았던 작가들의 작품과 우리네가 살아왔던 300여 년 전의 그림을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내가 신기하기도 했다.
풍속화속에 등장하는 파초는 창밖에서 넓은 잎을 펼친 채 시야에 들어왔고
신윤복의 그림속의 여인에게서 날 것 같은 향내가 내 앞의 여인에게서도 풍겼다.
나도 오늘은 뭔가 평범한 일상을 벗어 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전시회장을 빠져나와
노모를 모시고 온 모녀의 사진을 담쟁이와 함께 담아 드렸다.
마당 한 귀퉁이 에 심어진 고운 여뀌가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기생여뀌.
그림속의 기생이 환생한 것 같다는 생각에 쿡! 웃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많은 사람들은 연신 미술관을 향하고
우린 그늘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담소했다.
가을은 하루해가 너무 짧다.
가을 다 가기 전에 고궁산책을 하러 다시 와야지.
성북동의 가을도 많이 깊어졌고
내 마음에 생각도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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