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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이야기 (수원화성)

수원화성/용주사의 만추

가을의 고운 빛 따라 좋은 님들 오신다기에

마중하였더니

파란하늘 한줄기 바람도 같이 왔습니다.

만남이 반가운 사람들

어디서 무엇을하며 살든

보고싶은 사람으로 각자의 가슴에 새겨진다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가을처럼 ~~

 

늘 걷던 길을 오늘은 화성어차를 타고 팔달산을 오르기로 합니다.

연무대 앞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화성어차

하루 12회운행

주말이나 공휴일은 13번운행

첫차 오전 10시

요금 3000원

 

 

동북공심돈

 

팔달산 아래 사당.성신사.

 

 

팔달산 정상의 화성장대

수원화성의 제1 지휘소의 역할

 

내려다 본 시내와 광교산

아침의 안개로 시야가 약간 흐림.

 

화성행궁

 

팔달산을 내려오며 서일치

 

 

서북각루에서 본 화서문과 장안문

 

 

 

 

 

 

 

화서문

 

 

서북공심돈

 

 

장안공원

 

 

북서포루

 

 

 

 

 

화성어차

 

산수유가 익어갑니다.

 

 

 

 

벨로택시라는 화성을 도는 자전거택시랍니다.

화성행궁 앞에서 탈 수 있지요.

 

 

 

 

방화수류정과 용연입니다.

 

 

 

 

 

뒤로보이는 기구는 헬륨을 이용한 기구인데

한번 이용요금 18,000원입니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수원화성을 돌아 본 후

용주사를 찾았습니다.

 

용주사

 

본래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습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8일만에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 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설법을 듣게되고 이에 크게 감동, 부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면서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라 하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보경스님을 팔도도화주로 삼아 이곳에 절을 지어 현릉원의 능사(陵寺)로서
비명에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호하고 그의 명복을 빌게 하였습니다.

불교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던 당시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 세웠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낙성식날 저녁에 정조가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라 불렀고

그리하여 용주사는 효심의 본찰로서 불심과 효심이 한데 어우러지게 되었습니다.

전국 5규정소(糾正所:승려의 생활을 감독하는 곳) 중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했으며,

팔로도승원(八路都僧院)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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