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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이야기

독산성/2021-07-25

낮에는 꼼짝 못하고 

저녁 해거름에 올랐더니 

기우는 해 잠깐 서산에 걸리고

아쉬운 몇 장 담고 노을을 보았다. 

 

독산성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권율(權慄)이 왜적을 물리쳤던 산성.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기록에 의하면 원래 백제가 쌓았던 성이며,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던 곳으로,

도성의 문호와 관련된 전략상의 요충지이다.

1593년 7월에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이

근왕병(勤王兵:왕을 가까이에서 지키는 군사) 2만 명을 모집하여 북상하다가

이 성에 진을 치고 왜적을 물리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듬해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불과 4일만에 백성이 합심하여 수축을 하였다.

이와 같은 독산성의 예는 이웃에 모범을 보여 금지산성(衿之山城)에서도 군량을 모으고 병사를 훈련시켰으며,

이어 월계산성(月溪山城)과 파사성(婆娑城)으로까지 퍼졌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 성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1602년(선조 35) 변응성(邊應星)이 수축하고,

1796년(정조 20) 수원성의 축조와 함께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세마대지(洗馬臺)의 전설이 남아 있어,‘독산성 및 세마대지’로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즉 1593년 권율 장군이 주둔하고 있을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끈 왜군이

이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지게를 산위로 올려보내 조롱하였다.

그러나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백마를 산 위로 끌어올려 흰 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씻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판하고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 세마대는 1957년에 복원되었다.

현재 성에는 석축 약 400m가 남아 있고 4개의 성문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산성 [禿山城]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클릭하면 큰 사진)

 

동탄쪽의 풍경

보적사

멀리 수원의 광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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