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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어머니의 눈물 처럼 감꽃이 집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감나무 잎새가 어우러지고
행여 눈에 띌까 감꽃이 피었다.
올해에는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어
가을의 풍요를 말해줄 수 있을까?
아릴 적 감나무 아래에서
작은 벌들의 날갯짓 소리를
친구들의 재잘거림으로 느끼며
떨어진 감꽃을 기다란 풀꽃에 끼워 목걸이를 만들었었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늦둥이 막내딸이 벌에 쏘일세라,손에 감물 들세라, 작은 표주박 가득
감꽃을 주워 오셔서 당신 무릎에 나를 앉히시고
무명실에 감꽃을 꾀고 계셨다.
화려하지도 않은 빛깔의 감꽃 목걸이의 의미는
그래서 더 각별한 것이리라
아버지는 내 나이 스물둘에 봄을 이별하셨고

어느 날인지 그때도 감꽃이 피고 지는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시골의 오빠 집엘 가시고 싶어 하셨다
휴가를 내어 어머니와 함께 시골 오빠 댁에 가는데
소나기는 앞이 안 보이게 내리고 있었다 

그리던 아들집에 가신 어머니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뒤돌아 서울로 돌아가시겠다고 가방을 챙겨 드시는 거였다
우리 형제들은 안 보이는 곳에서
치매가 온건 아닐까 근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안되고
그 소나기 속을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이없는 봄날은 세월속에 잊혀져 갔다.

내 나이 서른
어머니의 한숨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함박눈 속에 당신곁을 떠나는 막내딸 손에
뭔가를 쥐어 주셨다
무심코 주머니에 넣어둔 그 작은 물건을 저녁에 펴 보았을 때
여러 번 싸고 또 쌌던 그것은 만 원짜리 다섯 장이었다.
그리고 연필끝에 침을 발라가며 쓰신 편지....

"너희들은 다 잊고 살았겠지만
언젠가 오래비 집에서 비 맞으며 되돌아온 것은
이 돈 때문이었다
네가 결혼하는날 새 사위 맛난 것 사 먹게 하려고
아껴 싸고 또 싸서 감나무 밑에 묻어 두었었지...
시골에 가니 소나기가 오기에 혹시나 묻어둔 돈이 떠내려 갈까
그 걱정으로 돌아온 거였다..."

어머니 가신지10년이 지나
이제 살아계시다면 아흔넷.....
올해도 감나무 잎은 어우러져
감꽃은 수줍게 피고
나는 어머니의 눈물처럼 떨어지는 감꽃을 주워
딸아이 목에 걸어줄 목걸이를 만든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제는 눈물로 불러보는 이름이 된 지 오래.......
어머니!
오늘도 감꽃은 어머니의 눈물처럼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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