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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알곡을 품에 안다.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는데 무슨 알곡을 거두냐 구요?

우체국에 택배 보낼 일 있어 다녀오는 길에

비바람에 떨어진 은행 알이 밟혀 깨지는 것이 아까워

마침 주머니에 있는 비닐 봉투에 주워 담았더니 두 홉 정도가 되더군요.

그날 이후

해마다 버심 하게 보았던 나무들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그렇게 사소하게 시작된 은행 알 줍기에 재미를 붙인 뒤

산책을 가도 은행나무가 어디 있을까 살피고 밤나무는 어디 있을까 살피고

그렇게 들길 산길을 나들이 겸 다니다가

고들빼기도 캐고 고구마 캐는 밭을 보면 고구마도 사고

고구마 줄기 얻어와 반찬도하고 그런 재미들이 꽤 쏠쏠했지요.

눈앞에 보이는 황금들판이 내 것인 양 뿌듯하기도 하고

코스모스 핀 들녘은 나를 위한 축제장이라 여기며

호젓한 호수의 쉼터에선 내 별장인양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주일이 가고

결과는

은행 서너 되 밤 서너 되는 족히 되어

이번 겨울은 주전부리가 고급스러워지게 생겼습니다.

세상에 표 없는 일은 잠자는 것과 노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진즉 이런 부지런함이 있었다면 남들 다 가지고 사는 아파트 한 채는

사두어 아이들 결혼자금 걱정은 안 해도 됐을 텐데

그동안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한 날들이 후회 되는군요.

이제 작은 철이 드는데 망령들 날이 머잖은 건 아니겠지요?

기운내고 오늘 하루도 작은 보람으로 채우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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