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밖에 잘 나가지 않으니
오래전 생각들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밖에 바람이 찬가보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황소바람처럼 느껴진다.
이런 날은 뜨끈한 국물이 있는 무엇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김치수제비를 만들기로 했다.
먹어 줄 식구는 아무도 없지만
나의 소중한 추억속의 맛을 찾는 일은 즐겁다.
60년대 초
우린 아주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
동네 아주머니 이고 가는 짐을 따라 고개 넘어 간 곳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
거기다 집은 고래 등처럼 아주 큰 집이었으니 신이 날 밖에...
이사 후 일주일 만에 막내오빠는 군에 가셨고
이듬 해 봄부터 아버지는 주변 밭에 유실수를 심기 시작 하셨다.
앵두 ,복숭아 ,자두 밤 ,감 은행 ,잣 ,호두 ,석류 등등...
그리고 꽃을 가득 심어 온 집안을 꽃집처럼 가꾸어 가셨다.
밭에는 땅콩이며 딸기 ,도라지 ,생지황,작약,목단,목향,토란,우엉,당근등
시골 사람들이 흔히 경작하는 농작물이 아닌 것들을 신기하게도 많이 심어 놓으셨다.
그러니 가을엔 추수할 것도 많고
주전부리거리로
해바라기씨,땅콩,호박씨,고구마,밤등을 준비 하셨다가 공부방에 밀어 넣어 주시곤 했다.
내겐 그 모든 것 이 부족함 없는 유년이었지만
한 가지 불만은
동네 아이들과 산과 들로 뛰어 다니며 개구지게 노는 일을 못하게 하셨던 것.
썰매도 튼튼하게 만들어 주시고 팽이며 놀이 감 을 손수 만들어 주시는 유별난 손재주를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인 우리 아버지...
아버지를 기억하자면 끝이 없다.
참 자상하신 우리아버지는 전통 한옥을 지으시는 대목 일 을 하신 분이시다.
암튼 유년시절엔 선생님이
집에 괘종시계 있는 사람, 방 세개 이상 있는 사람 ,소 키우는 사람...
지금은 참 웃기는 얘기가 되었지만 뭐 그런 지질구레한 질문에 난 손을 거의 다 들었던 것 같다.
수제비 한 그릇에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말았다.
내가 여섯 살 때 시집온 우리 새언니는 고운만큼 음식을 아주 잘 하셨다.
무엇이든 얌전하고 깔끔하게 하시는 분이신데
언니 손에 밥을 먹고 자란 나는 엄마의 음식보다 언니의 손맛을 더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 중에 생각 난 것이 김치 수제비.
멸치 국물에 김치 송송 썰어 넣고 고추장 한 숟갈 첨가
밀가루 반죽 해 놓은 것을 손으로 떼어 넣어 끓이면 되는 것이다.
구수한 수제비 한 그릇이면 웬만한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며
다른 반찬이 크게 필요치 않으니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오늘 혼자 끓인 수제비 한 그릇에 난 한 움큼 의 행복을 맛본다.
이제는 칠순을 넘긴 우리 고운 새언니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저녁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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