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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마음의 빚

 

 

오 년 전의 일이다.

DSLR카메라가 보급형이 나와

나도 그 대열에 겨우 낄 수 있었던  무렵.

똑딱이를 들고 다녔던 나는

얼마나 좋았던지 화성으로 달려가 몇 장 찍어보고

날이 어두워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남루한 차림의 한 아저씨가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 딴엔 무서운 생각이 들어 자리를 뜨려는데 불러 세운다.

달아날 수 도 없고 아는 체 할 수도 없어 엉거주춤 하는 사이 다가온 아저씨

부탁이 있다고 했다.

( 저녁을 굶었다거나 술이 고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겠지)

 

그러나

간절한 목소리는 그런 부탁이 아니었다.

자기가 많이 아프고, 혼자 살고 있으며

제대로 된 사진을 지금껏 찍어 본 적이 없으니

작가 선생님이 한 장 찍어 현상을 해 집으로 보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카메라만 보고 전문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정말 많이 아픈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이를테면 자기의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처음 들고 나간 카메라 작동을 제대로 할 줄 몰라 난감하여

사정이 이래서 안 되니 며칠 말미를 주면 연습해서 찍어 주러 공원에 나오마 했지만

못 미더워서였는지 막무가내 당장 찍어 달라 하였다.

후렛쉬를 터뜨려 몇 장 찍고 주소는 필기도구가 없었던 탓에 외워가지고

집으로 달려와 적어 놓고 사진을 보니 이건 영 아니었다.

핀도 제대로 맞지 않았고 너무 어두워 현상할 것이 못되었지만

전화연락이 안되니 사정이 이렇게 되었다 라는 말을 전하지 못하고 한 달이 간 것 같았다.

 

마침 사진관 갈일이 있어 갔다가 그 안타까움을 얘기 했더니

자기가 그 집을 찾아가 찍어다 현상해서 액자에 끼워 전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못한 일을 전문가가 해 준다니 얼마나 고마웠던지 ...

지금도 공원을 걸으면 그 때 내가 지키지 못했던 약속이 떠올라

마음이 편하지 않다 .

그 분이 조금 더 건강해져서 살아 계시다면

이제는 제대로 된 사진을 찍어드리겠노라고 하고 싶은데 연락처를 잊은지도 오래다.

 

가끔 장안공원을 가면 혹시 그 때 그 분이 나와 계시지 않은지 두리번거리기도 하지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니 찾아 낼 수도 없다.

아직도 남은 마음의 빚

그 빚을 덜어내는 일은 내가 만나는 사물들을 아름답게 담아 내 

여러 사람에게 선물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오늘도 내 좋은 친구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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