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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우리 언니

2004 5

 

우리집은 일곱남매
내겐 언니셋 오빠셋이 계시다 .
그중 한세상 먼저 살고 가신 나의 언니를 얘기하려 한다

나보다 스물세살이 많은 언니
학교 마당엔 가보지도 못하시고
집안일만 거들다가 열아홉 섣달 그믐에 혼례를 올리고
상당산성 안에있는 산골마을로 시집을 가셨더란다
그 이듬해 6,25 동란이 나고 형부는 강제 징집이 되어 가신후
날아든건 전쟁터에서 행불이 되셨다는 통보만 있을뿐
생사는 명확히 모르는데 이리 저리 확인해보니
국립현충원안에 수많은 용사비 안에 이름 석자만 남아 있었다.

6.25난 그해 겨울에 유복자를 얻어
지금 그조카는 나보다 네살이 많다
내가 태어 났을때 언니는 다섯살난 아들을 데리고
친정엄마의 산바라지를 하러 왔었다니
쉬이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
엄마가 막둥이로 인해 늦도록 맘고생 하실것 같아 그랬다지만
뒤란에 가서 날 쥐어박으며 얼른 죽으라고 했던 기억 때문에,
언니랑 마주치는걸 아주 싫어했다.
그런 언니가 미워서
산너머 언니좀 집에 못오게 하라고 엄마에게 사정을 하기도 했었지.

그후
내가 도시의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을때
그 언니 집에서 신세를 졌었고
조카의 취직으로 서울로 이사한 언니집에서
또다시 스무살 시절부터 10년을 얹혀살게 되었던 나에게

 

어려서 너 죽으라고 쥐어박은 벌을 받는거라고 하셨다.

3년전 언니는 오랜 병환끝에 세상을 뜨셨다
미망인인 자신이 죄인이라고 물색고운 옷을 입지도 않으시고
오로지 아들손자 평안만을 기도하던언니
혼자서 한글이며 한문 셈 공부 하셔서
장사도 하시고 억척스레 모아 아들고생하지 말라고
큰집도 사주시고 ,정작 언니는 호사가 무엇인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모르고 가셨으니
나는 언니이기 이전에 엄마같은 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가정의 달
부모 형제가 유난히 많이 생각나는 5월이다
높은 산자락에 영면하고 계신 언니는
천상에서 형부얼굴 마주하긴 하신걸까?
6개월정도의 결혼생활에 50여년의 긴이별끝에
정말 천상에서 마주치고도 못찾으신건 아닐까?
한많은 세상두고 가서 이젠 조금 편안해지셨을까?
문득 바라본 흐린 하늘,
언니가 잠든 산자락엔 휘파람소리 같은 바람이 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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