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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김치와 우리엄마

2004 5

 

늦게 결혼하여
열식구와 함께 시작된 시집살이에서
서른네살 되던해에
내살림이라 차려 시골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 .
그해 겨울은 마치 날개라도 달린듯
하루하루 수월하게 참 행복한 날들이 갔다

맨먼저 한일은
장독대를 만드는 일이었다
들어온 차에서 고만고만한 장단지 세개를 만팔천원에사서
양지바른곳에 둔덕을 만들어 올려 놓고
하나는 장을 담그고
하나는 고추장을 담고
하나는 소금단지를 만들었다.
그 주변에 채송화랑 봉숭아랑 분꽃을 심어
날좋은날은 채송화가 피게 했고
저녁나절은 분꽃 향내로 때를 알게 하였다.
어린시절 장독대곁에서 자란 괭이밥 (우리동네는 시영이라 했다)
을 넣고 소금,백반을 넣어 봉숭아를 찧던 생각에
우리 애들에게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으니까 그 세가지 꽃은 꼭 심었던것이다 .

시집에 있을때 친정엄마는 사돈께 누가 된다고 한번도 와보시지 않다가
새살림 하는 딸 못미더워 우리집에 다니러 오신 그날
마침 김치를 담기위해 배추를 절였다가 가지런히 뒤집어 놓고
한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두아이 쫓아 다니느라 피곤했던차에 엄마가 오셨으니
믿는 맘이었을게다 .
한참뒤 일어나 보니
"얘야 더 자지,내가 김치는 다 해 넣었다
네가 물빠지라고 가지런히 놓았기에 속 만들어 넣었어"
(아니~~~ 뭔소리? )
"엄마 그 배추 씻었어요? 그거 진딧물 많아 잘 씻어야 하는데..."
엄마는 깜짝놀라시며...
"가지런하기에 니가 물빠지게 놓은줄 알고 속 만들어 그냥 넣었는데..."
우짜믄 좋겠노!
모처럼 오신 엄마에게 지청구를 해대며
난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다시 쏟아 씻어서 김치를 해 넣고
비싼 무도 다시사고,아까운 양념 다 달아났다고 심술을 부렸다.

딸아이 생각하여 하신일이 그르쳤음을 아시고
얼마나 마음아파 하셨는지
모처럼 딸네집 첫나들이가 엄마의 마음에 못을 박는 일이 되었다 .
그 얼마후에 우리집에 다시 오셨을때 그때도 김치를 하는 날이었다.
배추 절여놓고 옆집 새댁한테 커피한잔 얻어마시고 왔더니
김치는 이미 통속에 들어가 있는데
열어보니 양념 아끼신다고 분홍빛만 들여서 포기김치를 해 놓으셨다.
맘으로야 너무나 속이 상했지만 먼저일이 생각나서
손님대접할 김치라는 핑계를 대고 다시 빨갛게 만들어 담을수 밖에 없었다.

오늘 김치를 담으며 생각하니
칠순넘긴 엄마의 딸네집 나들이에서
(내가 엄마에게 얼마나 안스러웠으면 그리 하셨을까
막내딸이 그래서 애물단지였다....)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
지금 내 아이도 스무살
나도 친정엄마의 입장이 되면 그리 하겠지.
그저 안스러워서 ,그저 사랑스러워서......

나이쉰하나에 내엄마 입장
내딸입장 다 생각하니
이담에 나는 조금더 현명한 친정엄마가 될것도 같은데
가는세월 알수 없고 지금만큼만 선명한 정신이 있어줬으면 바램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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