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충주 오빠댁에 가자는 전갈을 받고
딸아이와 채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는데 폭우가 길을 막는다.
언니는 서을서 출발 했다는데
꾀 부리고 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9시 버스를 탔다.
가는 1시간 30분동안 날씨는 변덕을 부리고
다행히 비가 오지 않는 그 곳 풍경속에 나르는 나비를 보며
챙긴 짐 속에서 다시 내려 놓고 온 카메라를 떠올렸지만
틀린 일, 나비는 왜 그리 많이 날던지
심술아닌 심술로 속이 상했다.
상냥한 질부가 차려 준 점심상을 물린 후
차고에 자리를 깔고 한 해의 식량이 될 고추 다듬기에 돌입
115근이난 되는 고추, 장난이 아니다.
꼭지 따고 물 수건 해서 닦아내고, 그러는 동안 뜰에 퍼붓기 시작하는 비...
무서을 만큼 많은 비가 천둥속에 내렸다.
하루에 마치겠지 하던 나의 계산은 이미 틀렸고
내일 출근할 딸만 올려 보내고
일을 마친 시간은 어둠이 내려 앉은 시간이었다.
보송하게 말려야 가루로 만들거라며
벌크에 다시 집어 넣고
저녁식사후 거실에 모여 앉은 오빠네 가족, 그리고 언니, 나...,
듣고 또 들어도 재미 있는 옛날의 추억에 관한 얘기들
언니 오빠는 이제 나의 부모님 모습이 되어 계신다.
얘기도중 실수로 오빠를 아부지~ 하고 불러 좌중을 웃게 만든 이 막내딸 ^^
갓 시집온 새언니 등에서 홍역을 치루고
새언니 등에서 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던 나.
이젠 같이 늙어 간다며 웃으신다.
칠순을 넘기신 모습은 이제 힘에 부치는 일을 그만 하셨으면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는
개학날 초등학교 교실에서 아이들 재잘거림처럼 크게 들린다 .
오늘 밤은 엄마 아버지 꿈을 꾸었으면...그렇게 언니 옆에서 잠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
여느때 처럼 깨어 보니 오빠집 거실이다.
맞아 , 나 친정에 온거지?
집에 아이 깨워 출근 하라 이르고
현관을 나서니
산 허리에 걸린 구름 .
역시 풀벌레 소리는 들려오고
초록은 더욱 짙게 보이는데 이슬비가 내린다.
천천히 천천히
집 앞의 길을 따라 걸었다.
벌써 벼이삭이 올리와 허리를 굽혀가고 있다.
녹두렁에 물봉선도 피어 이슬을 달고 있고
분주히 날던 네발나비는 두릅나무 잎에 거꾸로 매달려 잠이 들었다.
잠이 깬 사슴은 목청 높여 울고
멧비둘기와 딱새의 노랫소리가 메아리 처럼 들려 오는 좁은 길...
이렇게 이름다운 아침을 만나다니...
한참을 올라가니
작은 절도 있고
어느 살만한 분이 지은 별장이 삼나무 숲으로 보이고
양어장엔 마름이 꽃을 피운 채 가득하다.
산 아래 집 뜰을 감상하자니 산모기가 어찌나 웽웽거리는지
더 머물 수 없었다.
헛개나무 잎도 아침 이슬에 젖어 윤기 흐르고
사위질빵이며 박주가리 꽃도 머리 감은 모습이다.
언니는 아직도 꿈을 꾸는 니가 부럽다는 눈초리다.
손에 가득 들린 호박잎과 노각,풋고추 ,단호박,비름나물 ...
아침 같은 시간에 언니는 한 보따리 먹을거리를 준비하는동안
나는 하늘바래기도 되고 먼산바래기도 되고
꿈을 꾸던 옛 시절로 돌아 갔었다.
오빠도 나를 나무라지 않고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시는 것은 아마도
꼬맹이 시절의 이 막내동생을 기억하시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제 다듬은 고추를 시내에 가져가 빻고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부치고 나니 점심나절...
다시 들어가 고추 따는 언니 오빠 거들어 조금 따 드리고
청결고추로 말린다고 씻어서 벌크에 넣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언니 오빠 오래 건강하시길 바라며
보고 싶을 땐 언제든 달려 가 안길 수 있는 품이 있음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