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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빈둥지

창이 훤히 밝아오면

부시시 눈 뜬 우리집 장남 후다닥 씻고 빈 속에 달려나가고

이어 알람이 울리면 잠자는 공주도 일어나

긴 머리 감기 싫어 눈을 떳다 감았다 꿈벅거리고

그러다 5분 10분 잡아 먹고 나면 놀란 토끼 눈이 되어 후다닥 달아나 버린다.

산다는게 무엇인가는 이때부터 내가 하는 고민이다.

 

아침을 준비 안해도 되니 고맙다 할 것이지만

빈 속으로 달아난 두 아이가 맘쓰여

간단한 찌개 끓여 마주한 남편을 바라보자니

우리가 걸어 온 지난 날이 새삼스럽다.

아이들 옆에 하나씩 앉히고

새로운 반찬을 먹어 주었을때 아이구 잘했구나 ~

흐믓하게 바라보며 그 작은 기쁨을 온전하게 누렸던게 엊그제 같은데

은발의 남편은 시큰대는 이빨을 걱정하고 있으니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30여년의 세월이 내 곁을 지나쳐 갔다는게 실감나기도 한다,

 

머잖아

새사람들이 나의 가족으로 편입된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

난 정말 어른 노릇을 지혜롭게 해 낼수는 있을까?

둘다 정해진 짝은 없으니까.

아직 그런 고민은 이르다.

 

아들은 드나듦이 의젓해서 의지가 되고

딸은 무슨 이유인지 안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이들도 딸도 다 있어야 하나보다.

살림 내 놓으면 서로 울타리가 되어 살아갈 뿐 기대할게 있을까만

내가 세상에 왔던 흔적이 아이들이기에

아직은 마음에 두고 사는건지도 모른다.

 

눈 앞에 보이는 빈둥지가 아닌

내 마음속에서 떠나 보내 가슴이 텅 비었을 때

옆지기와 둘만 남았다고 생각하면

신혼 때 보다 더 소중하고 큰사람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고

가슴에 품어 안을 수 있을까?

지금은 여자와 남자가 아닌 단지

아이들의 아빠와 엄마라는 의미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비오는 봄 밤

아들은 워크샵 간댔으니 오지 않을 것이고

남은 두 식구는 또 몇시까지 나를 빈 집에 있게 할지

텅 빈 거실을 좋아하는 음악으로 채워 놓고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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