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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친정엄마

딸에게 저는 친정엄마입니다.

오래전 제게도 친정엄마가 계셨었지요.

벌써 이별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어제 딸네 집에 가서 제가 한 일이 

오래전 저의 엄마가 하신 일과 다르지 않아 

새롭게 엄마를 떠 올려 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딸은 결혼해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3년 전에 사위를 따라 외국에 나가 있다 

돌아와 서울에서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백일 무렵 나갔던 손자가 이제는 다 자라

말도 잘하고 의사소통도 될 사이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 건강검진을 해야 하니 엄마가 잠깐 와 주시면 좋겠다는 전갈을 받고 올라갔더니 

손자가 쫓아 나와 반깁니다. 

제게 손자를 맡기고 병원에 간 사이 

밀린 설거지가 조금 있기에 거들어 주면 좋겠다 싶어 설거지를 했지요.

주방세제를 묻혀 그릇을 닦는데 거품도 안 나고 뭔가 잘 닦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잘 헹구어 정리를 해 두고 아이와 즐겁게 놀고 있으려니 돌아왔습니다. 

 

부엌을 보더니 

설거지 그냥 두지 뭘 했냐면서 

세제는 무얼 썼냐기에 가르쳤더니 

에구, 제가 잘 못 했다는 겁니다. 

그건 손 보호하는 보습제고 주방세제는 따로 있다는 거였지요.

(제가 쓰는 제품과 다르고

세제 건 손 보호 제건 글씨가 깨알보다 작으니 노안에 보일 리 만무)

어느 그릇이 잘 못 된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다시 다 해야 한다며 난감해하면서도

애쓰셨다고, 다음엔 오시거든 아이와 놀아 주기만 하면 된다는데 

딸이라도 여간 무안한 게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설거지 하실 것 같아 세제를 알려 드리려다 

일하시는 것 맘 아파 안 가르쳐 드리고 나갔더니 그랬다며 

남의 살림은 영 낯설고 모르게 돼 있다며 위로까지 합니다.

 

이야기는 35 년 전 

제가 딸아이 나이었을 겁니다 

저도 육아가 처음이라 힘들 때 

아침 일 끝내고 김치 담을 것을 소금에 절여 두고 

잠시 누웠다가 잠이 들었었는데 

일어나 김치를 해야지 하고 내다보니 

절여 놓은 배추는 

벌써 김치가 되어 통에 담겨 있었습니다. 

친정엄마가 잠깐 다니러 오셨었는데 

딸이 힘들까 봐 서둘러 김치를 해 넣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진딧물이 많았는데 잘 씻으셨냐 여쭈니 

가지런히 놓여있어 씻어 놓고 들어간 줄 알고 그냥 속을 만들어 넣으셨다고요. 

 

야채도 양념도 그때도 비쌌기 때문에 

저는 너무 속상해서 어머니께 뭐라 투정하고 

방에 들어와 한바탕 울고는 

통엣것을 다 쏟아 씻어 내고 장을 다시 봐다 김치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어머니도 난감하고 무안하고 하셨을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제의 저를 보며 

어머니의 말씀을 떠 올렸습니다. 

늙는 씨 따로 없다.

그러게요 

제가 나이 먹고 친정엄마 되니 그땐 몰랐던 일들이 제 일이 되고 

어머니의 명언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못난 막내딸 어머니를 아프게 해 드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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